*이스파냐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나는 고야의 일반 작품, 특히 중, 후기의 작품에서 하인리히 호프만의 <겟세마네의 기도>나 귀도 레니의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에서보다 더 진한 기독교적 의미와 가치를 느낀다. 고야의 생애와 다른 작품들에 관해서는 오늘 강사인 서영석 목사님이 강의하겠지만 고야가 그린 사계 중 <겨울>(1786, 프라도 미술관)에서처럼 생명 조건의 험악함 속에서도 강한 생명의 의지를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은 흔치 않다. 이보다 더 복음에 맞갖은 그림이 있을까?
혹한의 추위를 남김없이 드러내는 강렬한 표현력에서 뜨거운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엄동설한 칼바람이 부는 겨울을 살고 있다. 매서운 삭풍이 몰아친다. 바람을 따라 휘어진 가지와 펄럭이는 옷자락이 한기를 뼛속 깊이 느끼게 한다. 눈발이 바람을 따라 어지럽게 춤춘다. 겨울바람의 한복판에서 남자 다섯이 휘몰아치는 삭풍을 정면으로 맞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도포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한기를 막으려고 하지만, 옷자락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겨울바람에 온몸이 사정없이 얼어붙는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검은 군모를 쓴 군인, 세명의 농부, 그리고 미라처럼 두터운 외투로 온몸을 감싼 선두의 남자, 이렇게 5명이다. 가운데 3인은 추위를 녹이려고 팔장을 꼭 끼고 가슴을 보호하는 것도 모자라 서로 밀착한 상태다. 두명은 거센 눈보라에 눈을 감고 있고 한 명만이 세찬 바람에도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림에는 동물도 세 마리 보인다. 얼룩 개와 나귀와 죽은 돼지가 등장한다. 새끼줄에 묶여서 끌려오는 나귀는 방금 도축한 돼지를 등짝 위에 지고 있다. 돼지의 크기가 하마와 같다. 도축된 돼지는 겨울의 상징이다. 여름에는 고기가 쉽게 부패해서 추운 겨울에 가축을 잡았기 때문이다.
얼룩 무늬 개가 꼬리를 뒷다리 사이로 사리며 일행을 올려본다. 일행은 고개를 깊숙이 파묻고 발걸음을 옮기지만 개는 추운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쌩쌩 휘몰아치는 바람소리를 지르며 울어대는 바람머리에 당돌하게 코끝을 들이대고 있다. 그러나 뒷다리 사이에 꼬리를 감춘 것을 보면 얼룩무늬 개도 슬며시 이 추위에 살짝 겁이 나는 모양이다. 앞으로 닥쳐올 무서운 사건을 예미한 후각으로 감지한 걸까? 그러나 눈보라을 뚫고 가는 일행 가운데 아무도 앞으로 일어난 일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生은 살이 얼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듯한 혹한에도 따스해지는 봄을 기다리며 발걸음을 옮기는거다.
초기(1771-75)에 그린 고야의 초상화는 오늘의 강사를 닮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