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목회연구원(예목원) 로고가 나왔다.
정혜례나 작가의 작품에 강원경 디자이너의 솜씨가 결합된 것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는 노래(찬양)와 춤으로 표현된다.
초록은 영생, 붉은 색은 보혈과 구원, 파랑은 천상을 의미한다.
20세기 삼위일체론의 위대한 발견은 삼위의 관계를 순환적 관계,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περιχώρησις)를 다시 찾아 풀어 밝힌 것이다. 페리코레시스는 성부-성자-성령, 성자-성령-성부, 성령-성부-성자가 서로 안에 있음을, 상호 관통(gegenseitige Durchdringung), 상호 관계(gegenseitige Beziehung), 회호적 상입(回互的 相入, Ineinanderverwoben-sein) 속에서의 합일의 희열과 황홀을, 아름다운 하나님의 원형적 춤(輪舞)을 의미한다. 성서적 전거는 요한14:10-11과 요한17:21-26의 말씀이다.
하느님의 속성은 사랑의 자유와 자유스런 사랑이며, 지혜와 아름다움(영광)이다. 사도신조의 신학 전통은 전능과 전지를 앞세웠으나 사랑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사랑이 본(本)이고 전능과 전지는 말(末)이어야 한다. 기독교는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다스림)만을 강조하고, 그의 광채나 아름다움은 주목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독교를 율법적이고 도덕적인 범주에 굴복시키고 말았다. 요즘에도 툭하면 전능한 하느님의 강권(强權)적 통치를 말하곤 한다. 구시대적 유물이다.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하다”(고전 1:25)는 바울의 십자가의 도와 전혀 부합하지 못하는 말이다.
하느님은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신다”(시편 30:11).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술가, 춤꾼, 시인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춤은 십자가의 현실인 세상 안에서의 춤이다. 이 춤은 불필요한 폭력을 제거하고 슬픔의 고난을 치유와 해방으로 인도한다. 춤은 창조의 기쁨의 지극한 표현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춤의 은유는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생동감 넘치는 관계와 정의(正義)를 의미한다.
“춤출 때 우리는 자신의 좁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 필요 없이 춤동작으로 그 자리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의 중심을 자기에게 두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고 더 큰 춤의 자리로 들어간다. ... 온 세상이 우리의 춤판임을 알게 된다. 우리의 스텝은 한결 흥겨워진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춤추도록 부르셨기 때문이다”(헨리 나우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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